이화여대 유레카
1886년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모체이다.
1885년 52세의 나이로 한국 땅을 밟은 스크랜튼 부인은, 구한말 한국 여성의 지위가 너무나도 낮은 것을 보고,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세운다. 단 1명의 학생으로 시작해 어렵게 학생들을 모아 학교를 키워 나갔고,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내외는 이화(梨花, 배꽃)라는 교명(校名)을 지어주며 격려했다.# 1887년, 스크랜튼 부인은 의료선교를 위해 병원도 설립했다. 남녀칠세부동석과 내외법이 엄격하던 당대 조선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해, 여성전용병원을 짓고 미국에서 여성의사들을 초청해 왔다. 고종황제는 이 병원에도 '보구녀관(普救女館)'[7]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보구녀관은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이며, 최초로 간호교육을 실시하는 등 오늘날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과 의과대학/간호대학의 전신으로 규정된다.
메리 스크랜튼 부인 이후로 교장을 맡은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에 의해 이화학당은 유치원, 보통과, 중등과, 고등과 등으로 체계가 갖추어졌고, 1912년에는 이화학당에 대학과가 생겨 덕분에 당시 구제중학교 수준의 고등보통학교까지밖에 없었던 조선에서 여성의 체계적 교육이 가능해졌다. 이화학당 대학과는 조선총독부의 전문학교규칙에 의거해 1925년 구제전문학교인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인가되었고, 오늘날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의 전신인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의 본을 따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으로 발전해왔다.
1935년에는 정동 이화학당 자리에서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캠퍼스가 위치한 신촌으로 이전했고, 태평양전쟁 개전으로 미국인들이 축출되고 나서 1943년에는 정동에 남아 있던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구제중학교급)가 '학교법인 이화학원'으로[8]과 신촌으로 옮겨간 이화여자전문학교(구제전문학교)가 '학교법인 이화학당'[9]으로 법인 분리되었다. 당시 구제전문학교였던 이화여전은 여자교원양성소로 격하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구제전문학교로 복귀한 이화여자전문학교는 대한민국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 이화여자대학이 되었으며, 1946년 이화여자대학교로 개칭했다. 초대 총장은 메리 스크랜튼 여사로 본다.
이화여대 유레카 : http://eportal.ewha.ac.kr/
이화여자대학교에는 현재 신입생을 모집하는 14개의 단과대가 있다. 프라임 사업에 선정되어 단과대학 편성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 단과대학별로 고유 색상이 부여되어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졸업반지 및 학위복 모자의 술과 후드 색상이 결정된다. 각 단대별 고유색상 및 팬톤 컬러는 이대 교표 이화여자대학교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