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중계 무료
2006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어 신인왕 & MVP & 골든 글러브를 동시 수상 및 KBO 사상 최초의 루키 시즌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고, 이후로도 한화 이글스 구단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에 팀의 자존심이자 국내 최고의 투수로 리그를 지배하였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부동의 1선발로 활약하며 올림픽 야구 금메달[7]에 이바지하였다.
2012시즌이 끝난 후, 본인의 등 번호 99번을 한화 이글스의 임시결번으로 남기고 7년간의 국내 커리어를 뒤로한 채 국내 최초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미국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하여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6년 총액 6,173만 달러[10]라는 전례 없는 계약으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였다.
2013년부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소속으로 현역 최고의 투수들인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에 이어 팀의 3선발로 활약했다. 2014년까지 활약을 이어갔으나 커리어 초반부터 이어온 혹사의 여파로 데드암 선고를 받고 내리막길로 접어든 듯했다. 하지만 1.7%에 불과한 실질 복귀율을 이겨내고 2017년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 2019년에는 하락세를 맞이한 커쇼를 밀어내고 팀의 1선발을 차지하며 아시아 선수로서는 2번째로 올스타전 선발투수로 등판하였고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ERA 타이틀 홀더가 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였다.
2019년 12월 2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8,000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따내며 메이저 리그 아시아 선수 누적 연봉 5위, 대한민국 선수 누적 연봉 2위를 기록하며 커리어를 이어가는 중이다.
2020년에도 팀을 옮긴 후 비록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은 아쉬웠지만 준수한 정규시즌 활약을 바탕으로 2년 연속 All-MLB 세컨드 팀에 선정됐고, 아시아 출신 선수 최초로 최고의 좌완투수에게 주어지는 워렌 스판 상을 수상하였다.
2021년 한국인 최초 3시즌 연속으로 개막전에 등판했다. 비록 승은 챙기지 못했지만 토론토가 경기를 이기게 되어 류현진이 등판한 개막전 3번 모두 소속팀이 승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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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이다. 한국 투수 GOAT 타이틀을 두고 류현진과 경쟁할 만한 투수로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이자 아시아 최다승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박찬호가 있다. 허나 메이저리그 성적만 봐도 누적 성적은 우위지만 비율 성적에서 류현진이 유의미하게 앞서고 박찬호에게는 없는 사이영 상 득표[17], 타이틀 보유 등을 종합해보면 류현진이 박찬호를 넘어섰다는 것이 중론. 아시아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다르빗슈 유, 노모 히데오, 박찬호, 구로다 히로키 등과 함께 아시아 역대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으며 이들이 모두 우완투수인 관계로 자연스레 아시아 역대 최고의 좌완투수로 볼 수 있다.
류현진은 21세기 한국 야구사에 큰 변곡점을 그린 인물이다. 2000년대 초중반 프로야구 인기는 처참하게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프로야구의 인기를 극적으로 되살린 계기는 2000년대 후반 국제대회에서의 선전이 계기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며 그 중 으뜸은 단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다. 류현진은 그런 대회에서 21살의 나이에 캐나다 전 완봉승, 결승 쿠바전에서 8.1이닝 2실점 호투를 펼치며 한국의 9전 전승 금메달 획득에 큰 기여를 하였다.
두 번째 업적은 KBO 리그 출신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 선동열을 필두로 2000년대 후반 이승엽, 김태균, 이대호등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 주로 도전하던 무대는 일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본에서조차 성공한 한국 선수들이 극소수였기 때문에 한국 야구팬들은 한일 간의 야구 수준 격차가 벌어져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하물며 그 일본보다 수준 높은 메이저리그는 얼마나 넘사벽처럼 인식 되었을 지 안봐도 비디오다. 그런데 류현진은 2012년 겨울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며 포스팅을 신청하였다. 메뽕을 필두로 많은 사람들한테 포스팅 금액부터 비관적인 시선을 받아왔으나 예상을 한 참 뛰어넘는 금액으로 KBO 리그에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한명이 되었다. 그의 진출 후 많은 KBO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있다. 만약 류현진이 실패하였다면 KBO리그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도전 길은 완전히 막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O 최고 선수들의 목표를 NPB에서 MLB로 옮겼다는 점은 충분히 업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후발주자들이 류현진처럼 정상급 선수는커녕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한국으로 리턴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