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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u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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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urp


경상북도 경산시와 대구광역시에 있는 4년제 사립대학이다. 사실상의 본 캠퍼스라 할 수 있는 경산 캠퍼스는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대동)에 위치하며, 의과대학과 영남대학교 의료원, 일부 대학원이 소재한 대구 캠퍼스는 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 (대명동)에 위치한다. 학교의 상징은 천마이다.

대학교 교명은 경상도의 다른 이름인 영남(嶺南)에서 따왔다.

영남대학교의 전신은 야청(也靑) 최해청(崔海淸·1905~1977)이 1950년 지금의 노보텔 자리에 세운 청구대학[8]과 한국의 명가로 유명한 경주의 만석꾼 경주 최씨 부잣집의 마지막 부자이자 독립운동가인 12대손 최준(崔浚·1884~1970)이 1947년에 설립한 대구대학(현재 대구대학교와 다름)이다. 참고로 최해청과 최준 둘 다 경주 최씨 집안이다.[ 이 두 대학을 박정희 정권 시절 통합하여 만들어진 대학이 영남대이다. 이때 영남대의 법인인 학교법인영남학원 정관 1장 1조에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써놓았다. 박정희 사후에도 이 조항이 변경되지 않다가 현재는 결국 설립자 박정희로 변경되었다.[

 

 

영남대학교 urp 바로가기 : https://std.yu.ac.kr/std/std_login.jsp?isReactive=N

 

청구대학은 1948년 9월 최해청에 의해서 대구문리과전문학원 야간부로 종로에서 개교했으며 1950년 3월 포정동으로 이전하고 4월 25일 재단법인 청구대학 설립, 청구대학으로 개편했다. 1955년 문화동 현 노보텔 자리로 이전하고 1963년 병설 공업고등전문학교 설립했는데 이것이 경일대학교의 전신이다. 1964년 효목동으로 본부 이전했으나, 대학정비사업으로 한차례 흔들린 끝에, 붕괴사고가 일어나고 교직원 비리가 발견되자 이사회가 1967년은 청구대학이 학내외의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에 자력으로 존립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시기였다. 이때 청구대학 교수로 있던 노산 이은상 선생이 그해 5월, 5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6대 대통령에 연임된 박대통령에게 “각하. 임기를 마치고 나면 마당 쓸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진언했고,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영남대 탄생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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